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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짐작과 추측.

가장 최근에 있었던 절교한 어느 친구와의 일. A 말대로 왜 그렇게 그 아이에게 집착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내 속에서 계속 풀리지 않았던 어떤 것이 있었던 것 같다. 해석할 수 없었던 그 아이의 말과 행동들. 마치 별 이유없이 연인에게 차인 양. 그리고 최근에 그 풀리지 않았던 문제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어서 지금은 절교했지만 그 아이와의 인연을 감사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굳이 만나고 싶지는 않지만. 얘가 알면 또 나보고 가식적이라고 하려나. 가식과 예의의 경계는 애매모호하고 주관적이라는 것 또한 너를 통해 알게 되었지. 

내가 끔찍이도 싫어했던 그 아이의 성격은 사실 나도 가지고 있었던 부분. 그래서 그렇게나 싫어했나보다. 근거 없이 짐작으로 넘겨짚기를 잘 하고 그 확인되지 않은 추측을 진실인양 믿고 그것을 토대로 감정적인 행동을 하는 모습을 보면 정신적으로 문제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도 했다. 이성적이고 차갑고 쿨하다고 본인을 평가하지만 사실은 내 주변 사람들 중에 가장 감정적인 사람이었다. 감정적인.을 감성적인.이라고 해석하는 것을 보면서 무식하다고 느꼈고 이래서 사람은 책도 좀 읽고 배워야 한다며 나는 교양있는 사람이니까 라면서 참으며 나의 우월함에 감탄하곤 했던 것 같다. 

그아이 앞에서, 똑바로 바라보면서, 내가 느끼는 점이나 싫어하는 성격 혹은 습관을 말하면서 마주하지 못했다. 그런 소통 없이 그저 서로 참으면 된다고 피하면서 사이가 어긋났던 것 같다. 무엇보다 관심분야가 전혀 달랐기 때문에그아이의 수다를 받아줄 수 없었지만 때때로 대충 받아쳐주면서 그렇게 1년이 되니 지칠대로 지친 것.

가만히 보면 이것은 엄마의 성격이 아닐까 싶다. 우리 가족들이 대체로 서로의 속마음을 꺼내지 않으며 갈등을 비켜가는 성향이 있다는 것을 아주 최근에 깨달았다. 마치 잔잔한 호수 위의 우아한 백조처럼. 겉으로 보면 고요하고 평화로워보이지만 물 밑으로는 미친듯이 물장구 치는 호수 아래 카오스. 자미두수 말대로 은근히 냉정하고 이기적인 면이 있는 나에 조금 놀랬다. 난 인류학도니까 문화적 상대성을 실생활에서 지켜야한다는 사명감에 모든 일을 이해하고 인정하려고 했던 것이 문제였다. 인간이 어떻게 그렇게 모든 것에 초연할 수 있나. 없지. 성인 군자가 아닌 이상. 

갈등은 피하는 게 아니라 마주해야 하는 것이었는데. 

최근 잔잔한 호수 위 우리 가족을 보면서 생각했다. 난 상당히 단란하고 오손도손 잘 지내는 우리 가족을 내가 가진 최고의 재산이라고 여겨왔다. 하지만 그 단란함이 피상적인 면도 있었다. 자매들끼리는 서로 털어놓는 편이지만 서로의 감정상태에 대해서는 그리 예민하진 못했던 것 같다. 가족 전체적으로 수다는 있었지만 소통은 원활하지 못했던 것 같다. 최근에 와서야 우리 가족이 사실은 대화가 부족하여 가족 전체 상담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서로가 원하는 것이 진짜 무엇인지 모르고 그냥 외면하거나 각자의 잣대로 평가해온 것은 아닌가 싶다. 엄마가 전형적인 시집살이의 피해자였는데 그걸 표현하지 않고 꼭꼭 담아왔고 그걸 보고 자란 우리 세 자매도 하고 싶은 말은 꼭꼭 참는 버릇을 들인 것 같다. 그렇다면 아빠는? 아빠는 장남이고 개천에서 용난 케이스이고 직업 특성상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자존심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을 숨겨왔던 것 같다. 그래도 부부 사이는 상당히 좋아서 다행이긴 한데 우리도 자매간 우애가 깊기도 하고. 

겉도는 대화만 하면서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길 원하고 그걸 비켜가면 혼자 상처 받는달까? 그게 내 모든 인간관계에도 나타나는 것 같다. 친구와 혹은 연인과의 관계에서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길 바라며 갈등을 피해왔고 그 노력을 알아주지 못하면 혼자 토라지고 참다가 지쳐서 도망가버리는 게 내 인간관계의 패턴이었던 것 같다. 다행히 그렇게 도망간 케이스는 그리 많지 않지만. 속내를 털어놓으려면 누구보다 긴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고. 그래서 항상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많았고 그러면서 헛된 짐작과 추측이 잦았던 것 같다. 

결국 '짐작과 추측'을 '진실 혹은 팩트'로 가공하는 무식한 아이는 결국 나 자신이었다. 그 아이보다는 조금 덜하지만 그런 경향이 없진 않다. 어쨌든 덕분에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 계기가 되었으니 감사해야지. 아니 어쩌면 원래 내 성격이 모든 일에 나를 비춰보는 거울 같은 성격이라서? 내재화를 잘 하는 성격이라서? 가끔은 이게 또 짐작과 추측을 낳기도 하지만. 내 입장에서만 생각하는 것. 남의 입장에 서봐야한다면서 결국은 내 식으로 해석하게 되는 것. 

하지만 왜 그렇게들 짐작과 추측을 하며 오해를 낳는지 아직도 이해하지 못했다. 상대방을 알고 싶은 마음에, 내 나름대로 해석해서 이해하고 싶은 마음에 그런 것일까? 아니 이해.라기 보다 나를 방어하기 위한 것인가? 세상을 해석하는 나만의 기준을 만들어야 내가 속한 사회를 이해할 수 있게 되고 곧 내 정체성이 확립되기 때문인가? 
아. 이것 역시 작은 것 하나로 확대 해석하여, 또 짐작과 추측의 원인에 대해서 짐작과 추측을 하는구나. 가끔은 내려놓는 것도 필요한데 난 왜 모든 일에 이렇게 집착하는 것인가? 꼭 다 알아야 직성이 풀리는 건가? 

자기분석. 자기탐구는 끝이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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